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도종환(문화부장관.시인)의 '가을사랑' 중에서
정치가 문희상의 강직하고 털털한 인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10초도 되지 않았다.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섰던 국회의장은, 갑자기 춘치자명(春雉自鳴, 봄날 꿩이 제 흥에 겨워 울듯)처럼 저 시를 읊었다. 도종환의 시가 담고 있는 여성같은 부드러움과 깊은 내성에서 우러난 고요함 같은 것이, 문의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지만, 그가 시를 낭송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문희상은 열 몇 살 시절의 문학소년의 얼굴로 돌아갔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이란 대목에서는 스스로의 생의 어떤 대목이 생각나기라도 한듯 온전히 그 시행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