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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3-04 조회수 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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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통신 104호 2014. 3. 4] 제5차 '행동하는 양심' 창립기념 강연, 왜 다시 김대중인가?

5차 '행동하는 양심' 창립기념 강연


왜 다시 김대중인가?


(2014. 2. 25, , 19:30, 김대중도서관)




오늘 왜 김대중을 다시 얘기해야 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본 김대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사실 여기서 내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아까 비서실장이라고 소개 하셨는데, 영원한 비서실장은 권노갑 한분입니다. 나는 공식적으로 비서실 차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때는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여기 역전노장들인 이해동 목사님뿐만 아니라 최경환 실장님, 김태흠 이사님도 아마 김대중학에 관한 한 권위자일 것입니다. 이분들 앞에서 제가 뭘 안다고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겠습니까. 다만 우물안 개구리가 보았던 김대중 선생님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김대중 선생은 김대중 선생입니다.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을 김영삼 선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위상을 갖고 많이 노력한 김종필씨는 유능한 정치가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김종필 선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선생님이란 이름을 붙여서 통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박사라면 모를까 우리가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럼 왜 선생일까? 왜 선생님으로 불러도 그냥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을까? 측근들이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러서 선생님이 됐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스승입니다. 스승이란 말을 쉽게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에 스승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세분에서 네분입니다.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33살 꽃 같은 나이에 전 인류를 대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위대한 인류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不踰矩(불유구)의 경지인 공자, 이 정도만 되도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梵網經(범망경)이란 불경을 보면 사람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라는 시간 단위가 있는데 한 겁이 되려면 사방이 40리나 되는 둘레의 큰 원통에 성경과 불경에서 다 작다는 표현을 쓰는 겨자씨를 잔뜩 담아서 1년에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다 없어지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 겁이란 시간단위가 500겁이 되어야 현세에서 소매 깃을 스치는 인연으로 만난다고 합니다.

 

김광섭의 저녁에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마지막 구절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김환기 화백은 점 하나하나로 전체를 구성하는 작품의 제목으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붙였습니다. 그 작품을 보신 분들은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인호씨의 작품 인연에서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사람 간 만남의 신비함을 설명합니다.

 

한 민족 한겨레로 만나려면 4천겁의 전생의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될 인연이 7천겁이고, 부모자식의 인연이 8천겁이고 스승과 제자로 만나는 인연이 만겁이라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가 같은 시대에 본 것만 해도 엄청난 인연인데 만겁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측근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었다고 내가 감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처음 뵌 이후 오늘 이 순간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내게 선생님입니다.

 

내일모레면 내 나이 70이고 5선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의 모든 상임위와 본회의에 100% 참석합니다. 왜 그런 기록을 갖게 되었는가? 간단합니다. 늘 김대중 대통령이 옆에 따라 다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괜히 시켜주냐? 너 국회의원 할 때 별짓 다한다고 하고 국회의원 됐지 않았냐? 그런데 왜 회의에 안 나가냐?상임위원회는 기본이야. 학교에서 개근상 타는 이치와 똑같이 기본을 해 놓고, 잘하고 못하는 것은 그 다음이야. 그것도 안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야.” 그 분이 총재였을 때 원내총무의 의원출결 사항을 전부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공천에 반영했습니다. 철저히 했습니다. 내가 게을러져서 새벽 회의에 나가기 싫을 때도 벼락같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틀림없는 스승입니다.

 

며칠 전 기자들과 식사 중에 한 기자가 내게 왜 노인네가 자꾸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느냐고 했을 때 난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 때문이야.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에 안 나오면 국회의원이 아니라고 했어. 회의가 개의되면 일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어. 난 그 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냥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야.”

 

또 김대중 대통령이 왜 선생님인가? 나이가 많아 선생님이 아니라 모든 일을 개척자로서, 파이오니어로서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선생님이 대변인 직을 하셨을 때 대변인답게 한 첫 번째였습니다. 기억에도 생생합니다. 당시 말씀하셨던 것을 지금 봐도 역사와 정치철학의 혜안이 담겨져 있는 그런 논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대변인이란 이름이 아닌 선전부장이란 이름으로 하셨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닐 때였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의 모든 기록들도 그렇거니와 재경위원으로서, 정책의장으로서, 총재로서 첫 번째 길을 갔습니다.

 

우리 큰 애가 고대 법대에 가던 날 갖다 주라고 글을 써 주셨습니다. 서산대사의 시였습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이 시는 백범 김구선생이 즐겨 쓰시던 것이기도 합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들길의 눈을 밟으며 갈 때에도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그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내가 오늘 간 길의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나중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항상 모범이 되겠다고 생각하신 분이 아니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선생이라는 말이 그냥 불러서가 아니라 스스로 첫 번째가 됐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도 역사에 없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첫 번째 대통령이 됐던 것입니다. 역사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첫 대통령이 됐다고 난 생각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직전대통령이 되시고 직전대통령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전범을 위해서 온갖 것을 다 하신 분이 난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 첫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어디선가 김대중 대통령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노무현 대통령이 평생을 통해서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면서 가장 무서워했던 지도자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이렇게 말씀했어요. “문 실장, 대통령 잘못 모시는 거야. 현직 대통령이 어떻게 전직 대통령의 집을 찾아올 수가 있는가? 내가 가야돼. 내가 낫는 대로 연락할 테니 자리를 마련하게.”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노무현 대통령께 전해드렸더니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그리고 한 열흘 뒤에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로 오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한테 문안을 받으러 가시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결국 쓰러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 묻혔고 신문에도 안 났지만 참으로 어렵고 당황되는 그런 순간이 있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직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라는 전범을 만들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보여주셨고 두 번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등 그 모습들을 곁에서 보면서 저 양반은 선생님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게 먼저, (), 파이오니아, 선구자적 길을 가서 항상 전범이 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역할을 함으로써 그 역할을 해냈다는 것으로 기록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이 좋아하시는 말, 어록 중에 지금 내가 그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여기 삼남이 계십니다만 어머님은 내가 그 말에 감격한다고 몇 번 고백했을 때, “그건 이제 너무 지겨워요라고 말씀하신 말입니다.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는 세상,’ 그분이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었습니다. 세상을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고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생각합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통일의 꿈이 무지개처럼 쏟아 오르는 세상.’ 이렇게 셋으로 요약을 하는데 나는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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