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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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2-13 조회수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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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3호/46호]신뢰회복을.../민주주의 죽이기
* 9월13일 /10월23일 실린 43호/46호 희망통신입니다. 등록중 중간에 삭제되어 재등록하여 순서가 바뀐것이므로 착오없으시기바랍니다.
 
 
희망통신 43호     
                    '신뢰회복을 통해 국민통합에 힘쓸 때' 


국회 부의장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입니다. 추석인사를 계기로 잠시 쉬었던 희망통신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현실이 비록 많이 어렵더라도 추석 동안 마음만은 풍요롭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 한 언론사에서 원고를 부탁받았습니다. 소중히 읽었던 책 한 권을 소개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저 없이 ‘논어’를 선택했습니다.  ‘무신불립’을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지난 5일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의장단 만찬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야기 속에 신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말씀드렸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행히 그 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으셨는지, 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신뢰를 강조하셨고, ‘믿어 달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다행입니다. 신뢰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가 진정으로 회복되려면, 믿어 달라는 말씀보다는 믿음 주는 행동이 더 효과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현정부 경제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점점 깊어져만 갑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골 깊은 불신은 설득과 말로는 절대 회복되지 않습니다. 결국, 불신이 국민의 좌절과 절망으로 바뀌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무신불립’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국민이 보내는 신호에 상응하는 답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국민이 현경제팀을 저렇게 못 믿겠다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 심정을 정말 이해한다면, ‘아, 이제야 우리의 뜻을 알았나 보다’라고 국민들이 인정할 만한 조치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입니다.


경제의 어려움에 더해, 현정부 6개월여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일 중에 하나가 정부와 불교계와의 갈등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갈등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전부터, 그리고 지난 17대 국회에서 카톨릭 신도 의원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한국 종교계의 놀랍고도 훌륭한 전통을 재차, 삼차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상생과 공존, 화합의 전통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다종교가 한데 어울리는 공존의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은 이 훌륭한 전통이 위협받을 수 있는 지경까지 가고 있습니다. 국민통합을 위해서 불교계와의 갈등은 최대한 시급히 극복하고 종결지어야 할 문제입니다. 자칫 잘 못하면 치유할 수 없는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있습니다.


정부가 성의를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잃더라도 국민통합을 얻을 수 있는 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국민통합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많이 잃으면 또 어떻습니까. 함께 가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면 과감하게 다 버리고 갈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실기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아직은 현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현정부가 성공해야만 우리나라가 21세기 선진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정부가 민주정부 지난 10년을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을 갖고 시대정신을 바르게 읽어내 비전을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 비전과 소명의식을 통해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주길 바랍니다. 지금은 신뢰 회복을 통한 국민 통합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민족의 명절이라는 추석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가족이 모이고, 민심이 모이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여야를 떠나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하루속히 회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8.9.13
 국회부의장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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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통신 46호   
 
 '민주주의 죽이기'
처음에는 노무현 죽이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Anything but Roh(노무현)라는 현정부의 잘못된 발상이 시작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언론자유 죽이기, 시민단체 죽이기, 야당 죽이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정부와 현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새정부의 첫 국감이 끝나는 지금은 노무현, 참여정부 죽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렵게도... 지금의 현실은 민주주의 죽이기입니다. 참여정부 5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20년 이상을 훌쩍 뛰어 넘어 민주주의가 죽어있던 독재시절로의 회귀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가치




대한민국에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적 가치입니다. 이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리는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행복추구, 법 앞에 평등,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헌법이 정해놓은 국민의 권리가 지켜질 때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언론의 자유가 짓밟히고, 국민의 기본권은 심하게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의 사장이 끌려내려오고, 정부에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 책임자가 보직해임되었습니다. 92년 이후 처음으로 방송노조원 대량해고가 자행되었고, 땡전뉴스의 부활이라고 회자되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방송국의 편성권을 무시한 채 시작되었습니다.




자발적인 촛불집회 참가자가 남녀노소 구분없이 체포되었고, 정부정책과 맞지 않는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자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모든 인사들의 주변을 샅샅이 내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며, 국감장에 전경이 배치되는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국방부는 시중의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23권의 도서를 장병 사기와 정신교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여 군반입과 소지를 금지하였습니다. 우습게도 이 23권의 대부분이 ‘불온서적’ 지정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직된 시대착오적 발상에 대해 급기야 군 내부에서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상황도 발생하였습니다.




20여 년 전 5공화국의 장면이 오버랩 될 정도의 공권력 과잉이 자유와 정의를 짓밟고 있습니다. 언론과 학계, 국민 사이에서 공안정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법치라는 이름으로 검경을 앞세워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2008년 10월의 현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법치주의 남용, 국민적 저항 불러올 것




법치주의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남용되고 있습니다. 법치주의(rule of law)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과 함께 고전적 민주주의의 중요한 양대 기둥입니다. ‘법률에 따라 통치한다’는 민주주의 중요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형평성과 객관성을 잃은 법치는 법이 아니라 권력입니다. 국민을 대표하여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권력의 힘을 이용한 통치입니다.




지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보듯 국민에게 법이 아닌 권력으로 느껴지면 감당할 수 없는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촛불을 앞세운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년도 지나기 전에 국민의 3분의 2이상이 정부를 외면하고 불신하고 있습니다. 




이 국면에서 힘을 앞세워 잡아넣고 탄압하고, 언론을 장악해 홍보하면 해결될 것으로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판입니다. 왜냐하면, 현정권의 사람들은 구시대적 사고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지 몰라도, 국민은 21세기를 달려가는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 국민은 5공 6공 시절과 같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 속의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 조차 없는 강한 정의감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 민주주의 10년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탄압하며 힘을 앞세울수록, 국민의 힘은 권력에 조소를 보내며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촛불집회와 그 자리에 기쁘게 참여하는 유모차 엄마의 의미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편가르기로 국민 분열 조장/ 공황, 공안, 공허의 8개월




경제 때문에 만들어진 정부에서 민생경제는 공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으며, 수십년간 국민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온 민주주의는 신공안정국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현 정부 8개월은 경제적 공황과 정치 사회적 공안정국으로 국민적 공허함이 극대화된 기간입니다.




민생경제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시기에 이분법적인 편가르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정권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또한 현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서 좌파로 규정하는 색깔공세가 자행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에 대해 ‘틈만 나면 국가를 분열시키고, 틈만 나면 국가를 흔들려고 하는 세력’이라고 몰았고, 공권력은 대통령의 말에 과잉충성으로 보답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분열을 원하지 않는다면 국민통합을 위한 수단을 써야지, 지금과 같이 또 다른 편가르기를 조장해서야 되겠습니까. 분열을 촉발하는 것은 현재의 정부여당입니다.




현정부가 앞세웠던 실용주의. 실용이라는 말만 앞세울 뿐이고, 행동은 실용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실용은 이념주의와 상대되는 개념입니다. 좌냐 우냐의 편가르기는 결국 이념대결로 가자는 얘기일 뿐 결코 실용이 될 수 없습니다. 현정부의 곳곳에서 좌편향, 친북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적과 아군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참여정부를 친북좌파로 몰아붙여 가는 것은 결국 우로 가겠다는 것이고, 친북좌파라는 공세를 강하게 하면 할수록 현정부가 극우로 치닫는 우파 극단주의라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극단으로의 방향설정은 국민통합은 물론이며, 실용과는 전혀 거리가 먼 행태입니다.




민주주의의 유연성을 간과해서는 안돼


민주주의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연성(flexibility)이라는 대목입니다. 유연성이라는 말은 실용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며, 유연성이 없으면 탈레반과 같은 원리주의, 극단주의의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현정부는 국정전반에서 유연성을 길러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유연성에 대해 관용이라고 해도 좋고, 포용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지금과 같이 이념과 법치를 명분 삼아 내세운 채, 극단과 보복, 반대자에 대한 처벌에만 몰두한다면 정권의 앞날은 밝지 않을 것입니다. 극단과 보복은 민주주의에 독약이 될 것입니다. 불가능한 얘기지만, 만약 현정부가 원하는 대로 반대자가 없다면 그것은 곧 민주주의가 죽은 것을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체크 앤 밸런스(check and balance)의 원리가 무너진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을 직시하고 반대자에 대한 유연성 있는 포용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 죽이기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아이러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또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비난하면서 똑같이 따라가는 것.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처럼. 이것도 아이러니라고 합니다. 현정부가 참여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비난하고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현정부 8개월 동안 참여정부가 비난받았던 대표적인 일들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편가르기라는 비난, 언론과의 갈등, 과거에 대한 집착, 고소영으로 회자된 코드 인사 문제 등등




지금 당장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참여정부의 그늘은 더욱 커져만 갈 것입니다. 모든 실패의 책임을 아직도 참여정부로 돌리는 것은 지방권력은 물론 중앙권력, 즉 정부권력과 의회권력, 사정기관까지 모두 장악한 거대여당과 정부의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닐까요.




과거의 정부는 역사로 남겨두고 미래를 준비해주길 바랍니다. 참여정부라는 과거의 늪에서 빨리 빠져나와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경제와 한국의 미래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현정부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발전과 이어지기 때문에, 현정부의 방향 전환은 매우 중요합니다.


2008. 10. 23
국회부의장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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