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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2-13 조회수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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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통신10호] 1980년,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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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

오늘 아침도 신문을 펼쳐 듭니다. 남영동 보안분실이 인권기념관으로 재탄생 한다는 기사를 어쩐지 슬쩍 외면하고만 싶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원한의 장소이고, 두려움의 장소이기도 할 겁니다. 1980년에 김대중 선생님을 따라 정치를 시작한 저에게도 등줄기 서늘한 기억의 조각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곳인 까닭입니다.

5. 17쿠데타로 시작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은 당시 정치에 막 입문해 ‘민주연합청년동지회’라는 조직을 결성한 저를 수배자로 만들었습니다. 신군부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한 줄기로, 김대중 선생님의 맏아들인 김홍일 의원과 제가 주도한 ‘연청’ 조직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결국 수배와 동시에 도피를 시작
하게 되었고 꽤 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내가 보낸 편지 2통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 편지에는 두 가지 가슴아픈 사연이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에 관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 아들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수배가 시작된 직후 한밤중에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고 합니다.연로하신 아버님과 어머님의 잠들어 계신 방안을 구둣발로 휘젓고 다니면서 가택수색이라는 것을 했답니다. 아들을 찾아내라고 협박을 하면서 말입니다. 부모님은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분함을 못 이겨 밤을 새워 벌벌 떨고 계셨다고 합니다.

제아들, 석균이로부터 온 편지사연은 이랬습니다. 얼마 전 아들이 같은 반 친구와 싸웠는데, 그 이유가 아버지인 저를 간첩이라며 자신을 놀렸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너희 아버지 간첩이지? 빨갱이지?’

같은 반 친구들이 제 아들에게 수배 전단에 붙은 제 사진을 가리키며, ‘빨갱이 아들, 간첩 아들’이라며 놀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싸움을 하고, 너무 너무 억울해서 울면서 집에 왔다는 얘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는 저의 마음은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쿵 뜁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도 같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이 넘쳐나기도 하고, 신군부의 폭거에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과 아들 녀석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는 그 자리에서 자수를 결심했습니다. 내가 간첩으로 몰리는 것도 억울하지만, 내 아들이 간첩 아들로 손가락질 받아야 한다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앞에 당당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수를 결심했습니다.

당연히 자수는 곧 고문이란 말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남영동 분실로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겁이 나고 무서웠는지... 상상하기 힘든 취조와 구타, 매달리기 등의 고문이 계속되는 동안 수치심과 공포, 절망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죽어버리겠다고 벽에 머리를 쳐 박아 보기도 해봤습니다. 그래도 그 모진 고문을 참아내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들에 대한 억울한 누명만큼은 벗겨주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1980년, 제가 이 땅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제 한 목숨을 온전하게 거는 일이었습니다. 취조가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방에 있던 서인석 신부님이 세례를 해 주셨습니다. 스스로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였고, 저를 고문한 사람들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세례명으로 바오로를 받았습니다.

그 끔찍한 기억속의 남영동 분실이 이젠 인권기념관으로 변신을 한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당시 탄압받던 민주인사들과 이유도 모른 채 고문으로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겠지요.

저도 남영동 분실을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떠오르는 단상과 작은 소회를 적어 봅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고, 언젠가는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역사의 가르침이 사실임을 새삼 느끼며 고개를 끄덕거려 봅니다.

주말이 되면 5공화국을 다루는 드라마를 가끔 봅니다. 보는 와중에 종종 불끈불끈 주먹이 쥐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인 탓이겠지요. 그리고 또 다짐합니다. 이젠 정말 그런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없도록 해야겠지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는, 그때 감방 동기였던 이해찬(現 국무총리), 설훈(前 국회의원) 동지가 참으로 씩씩하게 오리걸음과 쪼그려 뛰기를 잘 하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2005. 7. 18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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