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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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2-13 조회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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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통신6]어머니!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어버이날 꽃을 파는 젊은이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에게는 어버이날 꽃을 사다 드릴 분이 안계십니다. 자식은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은 자식을 기다리지 않더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구구 절절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다시시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희상이 사람 좀 만들어 달라”며 간곡히 당부하시던 아버님...아버님은 제가 처음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다음날 쉬시는 듯 앉아계시다가 영원히 저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인근 경로당을 돌아 다니시며 당선사례를 하고 오신 직후였습니다. 유세장에 운집한 군중들 틈에서 지팡이를 짚고 절룩이시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다니시던 그 모습에, 저는 연단에서 그만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님은 저를 도와주셨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제가 어긋나간 것에 대한 실망감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노선을 함께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저를 다시 안보겠다고 할 정도로 보수적인 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계엄포고령 위반혐의로 4개월동안 고문을 당하고 나온 이후부터 아버지는 저를 돕기로 마음먹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저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 새벽, 아버지가 누워계신 묘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산소 앞에 서서 “아버지, 제가 옳았죠!” 하고 외쳤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래, 네가 옳았구나. 잘했다.”하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마음속에 깊이 응어리졌던 한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너무 바빠서 일일이 찾아다니기 어려우니까 대신 보내는 사람이 어머니라고 하지요. 저에게도 그런 어머님들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저의 친어머니시고 다른 한 분은 장모님입니다. 기약없는 야당정치인과 그 아내의 어머니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분은 살아 생전에도 마치 동지처럼 의기투합 하셔서 늘 저희 부부에 대한 염려로 자나 깨나 오매불망하셨습니다.

그러던 두 분은 마치 약속이라도 하신 듯, 돌아가시기 직전에 저희 부부에게 ‘언제 또 곤경에 처할지 모른다'시며 평생동안 개미 금탕모으듯 꽁꽁 모아둔 재산을 남겨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정치적 탄압과 세무사찰을 밥먹듯 당하는 것을 보아오신 터라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저희 부부가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두 분 어머님 덕분에 빚 정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젠가 책에서 읽은 거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종류의 거미는 죽기 직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거미줄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산란을 하고는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알들은 그 속에서 겨울을 나면서 죽은 어미의 몸을 양분으로 삼아 부화해서 새까맣게 살아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불효자일수록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는 정말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불효자일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많은 희생을 하신 부모님. 그러나 정작 저는 부모님께 좋은 세상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좋은 것을 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미를 묻은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운다는 청개구리처럼,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모님 영전에 엎드려 눈물을 삼키는 일 뿐입니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은 부디 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시대와의 불화로 부모님께 더 큰 고통과 시련을 안겨드리는 저같은 몹쓸 자식들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나이든 고아가 된 희상이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몇 줄 글월을 적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200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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